38주 2일차 출산 후기(자연분만 O/무통 O/관장 X/제모 X)
막달 들어서면서 주차별 포스팅에 게을러지고 무거워진 배를 안고 둥가 둥가 놀다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이슬 보고 출산해버렸어요.
2020.07.22 PM 12:23
3.3kg 남아 자연분만 성공했습니다!
무통 O / 제모 X / 관장 X
조리원에서 쓰는 저의 분만 후기 1탄!
7월 21일 드디어 이슬 비침
05:45 생리통 느낌의 약간 불편한 통증 시작. 화장실 갔다가 검지 한마디만 한 딸기잼 같은 이슬이 툭 하고 떨어짐.임신 기간 동안 첫 피 비침이라 한눈에 이슬인 걸 알았음.
07:57 변의를 느끼며 아랫배, 등이 조금씩 아픔. 응가 배가 아픈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이슬을 본 날이라 혹시 몰라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ㅅㅅ조금 보고 생리 후 나오는 것 같은 갈색 분비물이 묻어 나옴 확인.
08:42 기다리는 진통 증상은 없음. 배 뭉침도 딱히 없고 생리통 정도의 통증이 있다가 없다가 반복. 태동은 느리게 꾸물거림. 막달에 계속 있었던 약간의 울렁거림 속 쓰림 있음.
09:55 약간이 피비침. 2-3mm 정도의 작은 혈덩이 조금. 콧물 같은 선홍색 이슬.
14:30 불규칙적으로 아픈 생리통 수준의 통증+배땅김. 배땅김이 느껴져 가진통으로 인지.혹시 몰라서 샤워. 아기가 구렁이처럼 한 번씩 꿀렁거림.
14:52 진통 어플로 주기 측정 시작.
대략적으로 15시경부터 19:16시까지.팬티라인 아래로 잡아 빼고 뒤트는 느낌.약 15분에서 짧게는 5분 간격까지. 중간에 낮잠도 잘 수 있을 정도의 참을만한 통증. 진진통은 멀었구나 생각하고 집안일도 조금씩 해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뚝불로 기력보충.
20시까지 진통 주기 10분으로 늘어나더니 22시 이후 진통 없음. 막달에 생기는 가진통으로 생각하고 잠. 초산이라 뭘 잘 모르니 내일 일 보시러 오시는 시부모님과 함께 외래 다녀오기로 하고
남편은 내일 오후부터 이번 주 휴가 쓰기로 함.
7월 22일 외래 갔다가 얼떨결에 출산
00:10 소량의 갈색 이슬+3mm 정도 혈덩이 다시 비침. 소중이 부분이 부어서 묵직하니 아픔. 생리통 같은 통증은 없음. 막달 들어서부터 12시부터 아침까지 항상 깨어있어서 별생각 없이 앉아있었음.
00:15 빨리 진통 걸렸으면 하는 마음에 나비 자세함. 약한 생리통이 느껴지고 햇님이는 아직도 꾸물하니 잘 움직이고 놀고 있음.
02:52 불규칙하고 주기가 기나 생리통 느낌이 나서 다시 진통 어플을 켜고 주기 측정 시작.



03:13 팬티라이너 가득 갈색 분비물 나옴. 라이너 대신 중형 생리대로 바꿈. 아직까진 태동 꾸물꾸물하니 잘 느껴짐.
04:08 덩어리진 붉은색 이슬 다시 비침.
05:32 덩어리진 갈색 이슬 소량 비침
07:31 진통 10~13분 간격. 1분씩 오는 진통은 침대에 누워서 '끄응~'하고 앓는 소리 한번 나는 정도. 윗배 통증은 없고 아랫도리 당기는 느낌의 심한 생리통 정도라 참을만했음. 대부분의 통증은 약한 생리통 수준이었음. 주기도 한참 남은 것 같아 남편한테는 오후 반차 쓰고 오라고 함. 청소기 돌리고 샤워 후 병원 갈 준비.

혹시나 가진통이 규칙적으로 바뀌고 5분 주기로 1시간 동안 지속되어 오늘이 D-day가 될지도 모르니 배 사진도 한 번 더 남겼어요.
초산은 네발로 병원 기어가야 자궁문 겨우 1~2센티 열렸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허다하다 해서 아직 멀었겠거니 했는데 정말 큰 착각이었습니다.
일찍 도착하신 시부모님은 걱정이 되셨는지 현관에 선채로 절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셨어요.
9시쯤 병원으로 가는데 비가 억수같이 내리더군요.
수원천이 불어서 넘치는 걸 보고 사진 찍어 남편한테 보내며 병원 다녀올테니 이따 보자고 했습니다.
친구들과 희망 사항에 대해서 카톡도 하면서 갔어요.

9시 30분경 병원 도착해서 진통 주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양수 파수된 것 같진 않은지 간호사 선생님과 간단히 문진 후 앉아있는데 의사선생님께서 분만센터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외래 패스하고 얼떨결에 분만실로 올라갔습니다.
09:35분경 소변(양수) 검사, 태통/수축검사 시작
09:45분경 규칙적인 자궁 수축은 없음. 내진 결과에 따라 집에 갔다가 다시 올 수 있다고 하심. 내진. '억' 소리가 절로 나던 내진. 엄청 아프다기보다는 긴장해서 힘이 들어가고 매우 불편한 느낌. 다들 왜 공포의 내진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음. 그리고 내진 결과...
산모님, 4센티 열렸어요. 입원 수속하시겠습니다~
09:50 입원 수속 및 처치가 빠르게 진행됨.
10:00 수액 맞음. 수술용 바늘이 크다고 해서 긴장했는데 참을만함. 큰 혈관을 찾아야 한다는데 잘 안 보이는지 오른쪽에 한번 꼽고 실패. 왕고 간호사님 등장! 왼쪽에 바로 성공. '아프셨죠?' 하시길래 참을만했다고 하니 진통도 잘 참겠다며 칭찬해 주심.. 기분 좋음 ㅋㅋ
10:06 구원장님 오심. 엄마 4센티 열렸는데 안 아팠냐고 물어보심. 참을만했다고 하니 아직 아기가 위쪽에 있어서 통증이 심하지 않았나 보다시며 촉진제 맞고 무통주사 시술한다고 함.
10:15분경 분만실에 걸어서 입성. 여기 네 발로 기어들어가는 곳이라던데 이래도 되는 거냐 간호사님과 하하 호호 웃으며 들어감. 곧 닥칠 일은 생각도 못 하고... 멍청이 집게벌레 같으니라고.

10:25분경 바로 촉진제 투여. 진통 그래프가 5~30 정도까지 올라감. 바로 진통 오기 시작.
10:55분경 무통관 삽입 시술. 오늘 일련의 과정 중 가장 무서웠음. 쫄보. 움직이면 위험하다고 계속 주의 주시는데 무통관 삽입 시술이 거의 마무리될 때쯤, 찌릿하니 움직이지 말라 셨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무조건반사처럼 왼쪽 다리가 들썩여버림. 등 뒤에서 '아.. 피 난다...'하고 말씀하시는데 맨정신에 가장 공포스러웠던 순간. 알아서 잘 해주시는데 역시 난 초특급 쫄보...
11:03 2차 내진. 아직 4cm라고 하시며 '따듯합니다~' 하면서 양수 터트려주심. 아직 아기가 위에 있어서 무통 주사는 조금 있다가 놔주신다고 함.
무통 시술 이후 계속 변의가 느껴짐. 새벽에 밥도 먹었는데 관장도 따로 안 해서 진통 지나간 쉬는 타임에 화장실 가도 되냐고 너무 응가가 하고 싶다고 하니 간호사님이 아기가 나오려고 그러는 거라며 손을 잡아주심. 아아.. 따뜻한 분들..!!
본격적인 진통 타임 양수 터트린 후부터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됨. 무통주사 놔주심. 5~10분이면 무통 효과 있을 거라고 하심. 침대 시트를 쥐어뜯으며 참아보려 했으나 나도 모르게 끙끙 으으으윽 하는 소리가 남.(남들이 듣기엔 '끄아악~'이었을 수도 있음.) 중간중간 내진 몇 번 더 함. 남편이 빗길을 뚫고 달려오는 중. 혼자 진통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친절하신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손을 잡아주시고 호흡을 정리해 주심..
11:40 간호사 선생님이 계속 남편 언제 오냐고 찾으심. 빗길에 서둘러 운전하다가 사고 날까 봐 전화 안 하다가 이때 전화함. 앞에서 사고가 나서 꽉 막힌 상태... 40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함. 다시 진통이 와서 알겠다고 하고 끄응 거리며 끊음. 진통 한번 가고 나서 40분보다 아가가 일찍 나올 것 같냐고 하니 비슷할 것 같다고 하심. 본능적으로 남편이 아가 태어나는 거 보기 힘들겠다 싶었음. 평생에 한 번 탯줄 자를 기회인데 그거 못해볼 것 같아서 안타까움. 양쪽에 내가 잡을 수 있도록 손잡이 올려주심
그리고 시작된 간호사 선생님들과의 힘주기 타임. 진통이 올 때 보니 70~80 후반대까지 올라가는 걸 확인했는데 그 이후 수치는 확인할 정신이 아니었음. 폭풍 내진과 함께 온몸을 덜덜 떨면서 힘주기. 양수 파수 이후부터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는 덜덜덜 떨리고 있었음. 한 번 힘주는 건 그래도 어찌어찌 이를 악물고 하는데 바로 이어서 두 번째 힘주는 게 정말 힘들었음.
중간 상황을 보러 오신 건지 구원장님 분만실 방문하심. 간호사님과 대화하시는 거 들어보니 자궁문 다 열렸다고 함(중간중간 내진하실 때 몇 센티라고 말씀 안 해주시고 많이 진행되었다고만 하셔서 다 열린 줄 몰랐었음). 지금 무통이 전혀 안 드는 상황이라고 하심. 아기 위치는 아직 조금 더 내려와야 한다고 함. 조금 더 걸리겠네 하시더니 구원장님 나가심....
출산이 임박했는지 보호자로 '시어머님 오시라고 할까요?' 하고 물어보심. 그래달라고 함. 밖에서 마음 졸이시던 어머님 오셔서 손 꼭 잡아주시고 호흡, 힘주기 응원해 주심. 다리 확 벌리고 소리 지르면 안 되고 배보면서 아랫배에 힘을 주고.. 얼굴엔 힘주면 안 되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힘주는 게 정말 안됨.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 내려오게 도와주신다며 위에서 배를 눌러주심. 입으로 소리 내면 안되는데 너무 아픔...'아아 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수 차례 힘주기와 휘젓는 내진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함. '이건 결국 내가 해내야 하는 일이지 아무도 날 못와준다...!!' 더 죽기살기로 힘을 주기 시작함. 드디어 수술복 입으신 구원장님 등장! 기절할듯한 몇 번의 힘주기 끝에 드디어,,,
12:23분 3.3kg으로 햇님이 탄생
뜨끈한 것이 느껴지고 후루룩하고.. 그 순간 입에서 새어 나오던 신음도 사라지고 모든 게 편해짐. 어머님께서 탯줄 잘라주시고 잠시 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림.

모든 걸 하얗게 불태우고 아가가 품에 올려졌는데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의 나에게 간호사님들이 아가 태명이 뭐냐고 물어보고 말을 시키심.
'햇님이,, 햇님이요,,' 그러고 나서 뭐라고 뭐라고 혼자 중얼거린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음.
아가는 체온 유지, 검사를 위해 어머님과 함께 밖으로 나가고 후처치 시작. 애만 나온다고 출산이 끝난 게 아니었음.
회음부 절개 언제 했는지도 몰랐는데 꿰매는 느낌이 남. 따끔하고 실 지나가는 느낌. 힘주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자꾸 힘이 들어감. 꿰매는 동안 허리와 배가 또 뻐근하니 아파짐. 배랑 허리가 아프다고 말씀드리니 태반 때문에 그렇다고 다 꿰매고 태반 꺼내면 괜찮아진다고 하심. 태반 꺼내고 나니 엄청 시원하면서 모든 통증이 거짓말처럼 다 사라짐.
하지만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님. 내부 출혈 없는지 더 봐주심. 그리고 구원장님 가심. 드디어 남편 등장! 미안해를 외치며 쏜살같이 달려와서는 손을 잡아줌. 끄아앙..!! 진짜 너무 보고 싶었음..!! 타이밍 절묘하게 병원 도착하니 아가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함.
분만실에 누워서 간호사님이 배 눌러 오로 빼주시고 내진 한두번 더 봤던 것 같음. 그리고 혈압, 체온 체크하고 쉬었다가 남편 먼저 병실로 올라가고 나는 패드 대주시고 휠체어 타고 병실로 올라감. (병실에서 한 번 더 내진하는데 분만실에서 하는 것보단 훨씬 편함)

이렇게 제 임신이 종료되었습니다.
36주 검진부터 의사선생님께서 38주-39주에 나와주면 땡큐라고 하셨었는데 정말 38주에 나와버렸어요.
초산은 늦게 나온다고 해서 38주에 나와라 나와라 하면서도 진짜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더 크지 않고 촉진제 넣자마자 쭉쭉 잘 내려와준 우리 아들 너무 기특하고 고맙더라고요.
출산 과정을 함께 하지 못한 남편에게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원망보다는 빗길에 사고 안 나고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탯줄 못 잘라봐서 아쉬워서 어쩌려나 싶은 생각, 이건 진짜 평생 갈 것 같다고 하면서 미안해하는 게 안쓰럽더라고요.
아가가 위에 있다고 해서 좀 걸리겠거니 하고 남편한테 문자로 입원한다고 남겼는데 오후 반차&목/금 휴가를 위해 급하게 인수인계하는 중이었어서 문자 확인 자체가 늦었던 것 같았어요.
전화해서 말해줄걸..
폭우에 교통상황이 안 좋았던 것, 갑작스럽게 입원하게 될 줄 몰랐던 것, 의료진도 예상 못 했을 정도로 애가 빨리 나와 버린 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사실 엄청난 순산이라 축복받을 일)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괜찮습니다!
사실 첫째라 남편 언제 오냐며 구원장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아기 아빠를 찾으셨는데 내가 너무 죽을것 같아서 '그냥 꺼내주세요..'라고 했어요ㅋㅋ 들으셨을진 모르겠지만..
출산 당시엔 죽을 것 같았는데 조리원에 와서 들어보니, 저는 정말 순산한 편이더군요.
진통중 손을 꼭 잡고 호흡을 도와주신 간호사님, 어머님 폭풍 내진과 배밀기로 빠른 출산을 유도해주신 시크한 커트머리 왕고 간호사님 임신 기간동안 편하게, 긍정적인 생각 할 수 있도록 유쾌한 진료 해주신 구인모 원장님 (진료때마다 궁금한거 물어보라고 하시는데 매번 궁금한걸 다 설명해주셔서 질문할게 없었어요 ㅋㅋㅋㅋ)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의 위협과 각종 집안일, 스트레스로부터 멀어지게 항상 옆에서 도와주고 지켜준 싸랑하는 남편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분명 출산의 과정은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과 위험이 따르는 일입니다. 순산이라고 해도 정말 처음 겪어보는 고통을 겪었고 몸도 확 달라진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출산 후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보고 젖을 처음 젖을 물리는 기쁨은 그보다 훨씬 더 크더라구요.
새벽까지 잠못이루고 너무 걱정하고 겁먹지 마시고(제 경험담입니다 ㅎㅎ) 곧 만날 아기를 위해 출산 호흡 연습 꼭 하고 가세요! 모두들 화이팅입니다!!